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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쿠뜨락/이태종 요한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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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복, 십자가 현행범, 다시 마가자 행로 - PHP 레거시 사이트에서 복구되었습니다. (2026-03-30)



 


차쿠뜨락이라 하기로 했다.

칼럼의 간판을 뭐로 할까 하다가 현재 나의 소임지가 중국 요동 차쿠이고, 또한 뒤따라오는 추상적 공간까지 함의한다면 뜨락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았다. .. 하면서 혀끝이 감겼다 떨어지는 발음도 산뜻하다. 여기 사람들이 웬즈園子라고해서 옥편을 찾았더니 마당, 정원, 꽃밭, , 텃밭이란 뜻이고, 국어사전엔 채소밭. 그리고 건축물에 딸려 있는 빈터, 곧 뜨락은 여지餘地를 의미하였다<더보기>


 

 

전투복
차쿠지기 2026-01-23 23:35 조회 100

전투복

 

집이 네 군데나 되다 보니 길 위에서 살 때가 많다. 국내만도 아니고 중국에 두 군데나 된다. 직접 설계도를 그려서 완공한 중국 요동 차쿠의 교육관 2층 사제관이 본거지겠지만, 10년 전 심양의 중국 신학교에서 교수 신부를 했던 터라 도회지에도 나의 침대와 사무실이 있다.

한국에는 감곡 ‘사도의 집’ 이라는 곳에 언제든지 일상생활이 가능한, 더할 나위 없는 주거지가 있고 현직 양업교회사 연구소장으로서 배티성지 박물관 안에도 소장의 숙소와 사무실이 있다. 열거한 집들을 한 바퀴 돌다 보면 두 달 정도는 그냥 지나간다. 그렇다고 부러워할 일은 못 된다. 네 집 살림에 부산하기만 하지 나의 소유물은 하나도 없는 까닭이다.

 

타고난 성격이 꼼꼼한 편은 못 된다. 이곳저곳 옮겨 다니다가 여기저기 물건을 놓고 올 때가 왕왕 있다. 한국에 있어야 할 것이 중국까지 묻어오는 경우가 있고 중국의 물건이 한국의 책꽂이 위에 버젓이 놓여 있기도 하다.

대표적인 실례가 짝짝이 양말이다.

어떤 때는 일정이 너무 빠듯하여 빨랫감까지 비행기를 태워 다음 집으로 가는데 그럴 때 양말 한쪽은 한국에, 다른 한쪽은 중국에, 한 켤레가 생이별하는 일이 발생한다. 오래 궁리할 것도 없이 가장 주거지가 되는 차쿠의 옷장에 짝을 잃은 양말을 저장하는 ‘센터 서랍’을 두기로 했다. 일단 어디서든지 짝을 맞추지 못한 양발이 있으면 무조건 이곳에 모으고 본다. 그러다가 서너 달 만에 한 번씩 짝을 맞추면 얼추 해결되는데, 이산가족을 찾아 바다를 건너온 양말이 상봉하여 합쳐지면 묘한 행복감이 밀려온다. 흡사 제짝을 찾아 준 양말들이 전하는 답례의 인사만 같다.

 

필자가 사는 중국 차쿠 사적지는 우리나라 두 번째 사제이신 최양업 신부님의 첫 사목지이다. 거기다가 병인박해 직후 제6대 조선교구장 리델 주교님이 1882년까지 14년간 조선 교구청을 세워 한국교회 전체를 관장했던 곳이다. 한국교회 최후의 보루로써 중국 교회로부터 재치권까지 이양받아 주교좌의 역할을 해낸다. 조선으로 파견받은 대다수의 파리외방 전교회 사제들이야말로 여기 차쿠의 대규모 선교사 대기소에서 압록강이 얼기만을 기다렸다. 강 얼음 위에 적설이 되기만을 학수고대했다. 눈보라가 치는 날 야음을 틈타 하얀 광목을 뒤집어쓰고 조금씩 기어 도강해야 밀입국 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최양업 신부님의 첫 사목지라는 점이 으뜸으로 중요한 지점이다. 그분이 주시는 위로와 격려 덕분에 타국살이나마 등대지기처럼 여태 차쿠를 지켜 올 수 있었다. 그래도 최근에는 졸작 소설 <차쿠의 아침>을 읽고 오는 한국 방문객이 많이 늘어났다.

 

방문객이 오시면 게으르지도 못한 성격에 중국 공항까지 마중을 나간다. 자연스럽게 사나흘 버스 안에서 강의도 하게 된다. 말재주는 없어도 하루에 6시간 이상 되는 ‘꼼짝 마!’ 강의는 제법 효과적이다. 큰 나라라 오래 버스를 타야 하고, 다른 데로는 갈 수도 없으니 귀를 기울이게 된다. 어느덧 나흘이 지나 공항에서 헤어질 때가 되면 눈가가 촉촉해지는 분들이 적지 않다.

요즘은 바쁘다. 지난 6일 동안 4팀이나 오셨다. 최근 중국 정부가 성당 진입문 자체를 열어주지 말라고 해서 바깥에서만 바라보시지만 그래도 감동하는 모습이다. 이제 나에게도 가이드는 아니지만 소위 ‘현장 해설이 있는 중국 최양업 순례의 길’로 출장 나가는 일이 본업처럼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출장 시 챙겨가야 할 물건이 엄청 많다는 것이다.

또 강의에 집중하다 보면 “제 버릇 남 못 준다.”는 속담처럼 걸핏하면 물건을 놓고 오는 일이 벌어진다. 그런 와중에도 얼핏 드는 생각이 있었다. 물건이 섞이지 않고 따로따로 지정된 곳에 들어있다면 챙기기에 훨씬 낫겠다 싶었다. 그리고 이 아이디어는 제대로 적중했으니 가능한 많은 주머니가 달린 조끼를 입고 지정된 주머니에 지정된 물건만 넣어보았더니 그제야 잊어버리는 일이 발생하지 않았다.

이번 한국행 때는 벼르고 별러 괜찮은 브랜드의 멀티 포겟 등산 조끼를 구입했다. 앞뒤로 기존의 주머니가 6개나 되었는데도 중국 세탁소를 찾아가 속 주머니 4개를 추가로 달았다. 심장이 있는 왼쪽 가슴 부위 주머니에는 항상 묵주만 넣고, 반대쪽에는 여권을 소지하기로 했다. 그리고 휴대폰 하나만 달랑 가지고 다니면 결제 수단으로서는 한국의 그 어떤 은행 카드보다 만사형통인 중국 휴대폰을 아래쪽에 넣고, 그 반대편 주머니에 한국 휴대폰을 넣기로 했다.

평상시에는 시계를 차는 일이 없는 사람이 그 ‘현장 해설 출장’을 나갈 때는 손목에 시계를 차고 마치 군인이 “전투복”을 입듯 멀티 포켓 조끼를 차려입는다. 그러면 정신이 무장 되고 몸도 준비 태세가 되는 듯하다.

 

며칠 전 청주 교구의 대선배 되는 연제식 신부님이 55명의 방문객과 함께 다녀가셨다. 반가웠지만 화장실 건이 문제였다. 차쿠 교육관 안에 20개 이상의 좌변기가 있지만 무슨 소용이 있으랴? 문을 못 열게 하니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단 한 명이라도 화장실이 급하다고 하면 머릿속이 하얗게 되면서 멘붕이 왔다. 아마 그때쯤이었을 것이다. 가뜩이나 부리부리한 나의 눈과 광대뼈가 순간 일그러지고 말았으리라. 작별하던 연 신부님이 잘 있으라고 안아 주시며 귓속말로 한마디를 전하셨기 때문이다.

“내가 요즘 읽은 책에서 본 얘기인데, 실은 나 역시 잘 못 하는 건데...... 웃는 얼굴로 원숭이도 말을 듣게 하라는 그런 얘기구만!”

 

이제 멀티 포켓 전투복에 주머니 하나를 따로 비워야겠다. 그 안에 보이지는 않지만, 가장 중요한 것을 챙겨 넣어야겠다. 웃는 얼굴, 실로 그 어떤 강의보다 최양업을 잘 전달해 주는 준비물이 아닌가? 기쁜 소식, 복음의 군사로서 전투에 챙겨 가는 최고의 무기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