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현행범
밤 11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차쿠 사람들은 해가 긴 여름이라도 저녁 9시면 모두 소등한다. 일찍 잠자리에 드는 건지 전기세를 아끼려는 건지 알 수 없지만 겨울 같으면 7시가 되기가 무섭게 불을 꺼서 온 동네가 캄캄하다,
밤 11시가 넘어서도 30분을 더 기다렸으니 완전 범죄를 위해 꽤 인내한 셈이다. 드디어 오른손에는 모종삽을 왼손에는 미니 손전등을 움켜쥔다. 마지막으로 주머니에 챙겨 둔 차쿠 십자가를 확인한다. 손바닥보다 작게 제작한 도자기형 십자가이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야 없겠지만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성당 문을 나선다. 20년 가까이 차쿠에 살면서 처음으로 나서는 밤거리이다. 목적지는 성당과 담벼락을 맞대고 있는, 엎어지면 코 닳을, 바로 앞 집이다.
작년 봄밤의 일이었으니 벌써 1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손에 땀을 쥐게 된다. 한국에서 같은 교구 소속 사제가 순례단을 인솔해 왔을 때 고민거리를 털어놓은 게 발단이 되고 말았다. 그와 함께 차쿠 성당 앞 큰길 쪽 알박기 집 두 채가 잘 보이는 2층 창가에 올라갔다. “봐 봐! 저 집 두 채만 매입해서 성지로 조성하면 끝내 주잖아! 근데 지독한 집주인, 두세 배를 줘도 안 판다는 거야!”
잠자코 듣고 있던 동료 사제가 눈을 반짝였다. 자기도 100년이 훌쩍 넘은 본당 출신이라 들은 얘기가 많은데, 그 본당의 초대 신부님 역시 완강히 버티는 성당 옆의 땅 주인 때문에 애를 먹었단다. 궁리 끝에 담벼락을 파서 몰래 십자가를 묻어 놓고 오갈 때마다 주문처럼 외웠더란다. 그 결과 땅을 매입하게 되었노라는 미신 같은 스토리였지만, 얇아질 대로 얇아진 귀가 솔깃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과연 유혹하려는 세력은 정곡을 찔러왔다. 눈독 들이고 있음을 간파했을까? 두 집이 작당했는지 동시에 담을 부수고 대대적인 리모델링에 들어간 거였다. 집주인이 아예 집을 비워야 하는 대공사였다. 땅값 밀당을 하려는 건가? 큰길을 오가며 흘깃흘깃 훔쳐보다가 당분간은 살림까지 빼간 빈집이라는 게 분명해졌던 바로 그 봄밤이었다.
울타리도 없는데다 빈집이었다. 밤 12시 가까이 기다렸으니 완전 범죄임에 느긋해졌다. 거침없이 담벼락 밑을 파기 시작했다. 30센티에서 멈췄으면 괜찮았을까? 굳이 40센티를 파서 최양업 신부님 사진이 그려진 십자가를 안치했다. 내심 쾌재를 부르며 첫 삽을 떠서 막 떨어뜨리려는 순간이었다. 칠흑 같은 거리에 소리도 나지 않는 전동 오토바이가 나타났다. 헤드라이트 불빛이 코너를 돌아 곧장 다가오는 중이었다. 그러더라도 당연히 큰길로 직진해 가야 마땅한 불빛이었다. 그러나 또 한 번을 좌회전하더니 느닷없이 현장으로 덮쳐왔다.
강력한 헤드라이트 불빛이 코앞에서 작렬한다.
한 마리의 도둑고양이가 되어 어, 어, 어, 하다가 어이없이 벌어진 입에서 헛숨 소리만 나올 뿐 옴짝달싹 못하였다. 헤드라이트의 주인이 과거 문화대혁명 때부터 대를 이어 천주교를 박해한 첫 번째 집의 여주인이라는 걸 알았을 땐, 내 살다 살다 이렇게 딱 걸려보기는 처음이네, 라는 푸념마저도 쏙 들어가 버린다.
“동네 사람들! 동네 사람들!”
동북 여자의 사나운 목소리는 마치 불이야! 불, 이라는 외마디처럼 고요했던 어둠을 날카롭게 찢는다. 여기저기서 자다 일어난 주민들이 모여들더니 급기야 경찰서의 백차까지 출동했다. 이제는 아, 하는 말과 어, 하는 말 한마디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정식으로 고발 조치가 될 판국이었다. 바짝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그럴 수 없었던 것은 중국 교도소엔 쥐가 끓어서 엉덩이를 뜯어먹는다는 소문 때문이 아니었다. 캄캄한 어둠에서 별안간 헤드라이트가 덮쳐 올 때 마냥 머릿속이 하얗게 되는 까닭은 여전히 시행되고 있다는 중국 농촌의 현행법 때문이었다. 우리나라 옛날 궁중 사극에서 여인끼리 시기 질투할 때 대상자가 거주하는 방 밑에 혐오스런 물건을 묻어 놓는 그 주술 같은 저주법咀呪法이 아직도 서슬 퍼렇다고 위협했다.
그때부터 내심 경찰관이 압수해 간 십자가에 그려져 있는 최양업 신부님의 이름 석 자만 중얼거렸다. 가장 두려운 것은 신문 기사에 날 만한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천주교 신부라는 사람이 좋은 뜻으로 중국 농촌에 파견되어 살다가 현지 이웃을 저주한 죄명으로 법정에 섰노라고 보도될 게 뻔한데 명명백백 교회를 욕보이는 짓이었다.
하얗게 된 머릿속에 혹한에나 부는 칼바람이 일더니 오한까지 밀려왔다. 그런 와중에도 압수한 십자가를 뜯어보는 거구의 경찰관에게 눈을 떼지는 못한다. 거의 2미터나 되는 전형적인 만주족 장신이 십자가 앞면에 그려진 최양업 초상화에는 시큰둥하더니 뒷면에 쓰여 있는 한국어 문구에는 휴대폰을 들이댄다. 중국 바이두百度라는 앱으로 번역해보려는 시도이다.
방금! 뒷면에 한국어로 써놓은 ‘일상생활의 순교 모범이신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을 위해 빌어 주소서.’라는 말을 번역해서 읽은 거구가 일개 범죄자에게, 그것도 현장에서 붙들린 범죄자에게 몸을 돌리더니 이내 공손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중국어로 이렇게 번역된 것이다. “최양업 토마스 복을 파는 자시여, 우리에게 복을 거져 주소서!”
중국말에도 자세히 들으면 존댓말이라는 게 있다. 초등학교 1학년 정도의 순진무구한 얼굴이 된 거구의 입에서 이런 말도 이어졌다. “신부님, 이 도자기 십자가, 저 주면 안 돼나요?”
거구의 경관이 내뱉은 이 한마디에 일순 주변의 공기가 다시 봄밤으로 되돌아왔다. 죄인을 잡으러 왔던 경관이 부드러운 어조로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하나의 글자, 복福에 대해서 부언해 갈 때, 밤 1시가 넘어가는 차쿠의 밤거리에 웃음꽃까지 피어나려는 듯했다.
큰일 당할 뻔한 죄인은 다만 떠듬거리는 중국말로 몇 마디를 실토했을 뿐이다.
“맞습니다. 솔직히 이 집터를 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땅 축복하려고 파묻었을 뿐이예요. 저는 한국에서도 밀당이라는 것을 잘 못하는 사람인데 어떻게 중국에 와서 밀당을 하겠어요? 그 대신 오늘부터 저는 이 두 집에 건강과 행복이 내리도록 매일 묵주기도 한 꾸미를 바치겠습니다.”
물론 그때 내심으로 한 가지 첨언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용렬하게도 괄호 안에 넣어 마음속으로만 처리하지만 그 어떤 말보다 하고 싶었던 말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이 땅을 매입할 수 있도록 계속 기도하겠습니다.)


